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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늦더라도 계속 나아간다면…김금희 장편 '첫 여름, 완주'

출처:https://www.yna.co.kr/view/AKR20250503054100005?input=1195m


박정민 출판사 '듣는 소설 프로젝트'로 주목



'첫 여름, 완주' 표지 이미지

'첫 여름, 완주' 표지 이미지

[무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손열매는 어린 시절 글을 못 읽는 할아버지에게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마스크' 자막을 대신 읽어주다가 성우의 길에 접어든다.

시간이 흘러 열매는 어엿한 프리랜서 성우로 성장했지만, 함께 살던 절친한 언니 고수미가 수천만원을 갚지 않고 잠적한 이후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때때로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주변의 권유로 찾아간 정신과 병원에서 열매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일이 끊기고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을 다 갉아먹자 열매는 점점 더 초조해진다.



열매는 수미의 고향이 '완주리'인 것을 떠올리고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완주를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작은 시골 마을 완주에 수미는 없고, 수미 어머니 홀로 장의사 일을 하면서 간이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김금희(46)의 신작 장편 '첫 여름, 완주'는 주인공 열매가 완주에서 실패와 낙담을 딛고 다시 일어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미 어머니는 "갈 곳이 저기하면(마땅치 않으면) 여기 있어도 된다"고 붙든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열매는 완주에 머물기로 한다. 그는 이후 완주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이웃을 만난다.



혼자 살면서 암 투병 중인 수미의 엄마에서부터, 인간에게 지친 나머지 인류애를 잃어버렸다는 이웃 청년 강동경, 돌봐주는 사람 없이 사실상 방치된 중학생 한양미, 활동이 뜸해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 정애라까지.

등장인물들은 아픔을 간직했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이들을 마냥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재기발랄하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예를 들어 열매는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아니, 선생님, 말도 안 돼요. 제가 얼마나 밝은 인간인데요. (헛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 좀 그런데, 제가 제법 타이틀 있는 성우이거든요. 왜 초통령 핑구 있죠, 핑구"라고 반박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소설은 인생에는 슬픈 면이 있고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 그리고 아픔을 느끼는 순간에도 어느 한 곳에는 유쾌함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완주'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마을 이름인 동시에 길에서 잠시 벗어났거나 느리게 가고 있음에도 결국은 삶을 완주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 녹음한 배우들

'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 녹음한 배우들

왼쪽 위부터 김도훈, 염정아, 최양락, 김의성, 박준면, 배성우, 류현경, 김준한, 주인영, 임성재. [무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 여름, 완주'는 배우 박정민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가 기획한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책이라서 주목받았다.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염두에 두고 집필됐다. 작품은 종이책보다 오디오북으로 먼저 공개됐다. 고민시, 염정아, 김도훈 등 쟁쟁한 배우들이 녹음에 참여했다.

김금희 작가는 마치 희곡처럼 말소리 앞에 누구의 발언인지 인물의 이름을 적었고, 장면 전환을 위해 어떤 음악 또는 효과음이 들어가야 한다는 지시어도 담았다.

'첫 여름, 완주'가 소설이지만 희곡처럼 읽히고 발화 주체가 명확해 가독성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김금희는 2022년 6월 '듣는 소설 프로젝트' 집필을 제안받고 시각 장애인들과 정기적인 독서 모임을 가지며 이 작품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 "언젠가 박정민 대표는 왜 제안을 받아들였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아직 답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듣는 순간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라고 썼다.

224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