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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박수영 자매 ①

출처: http://topclass.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746

‘살리는 일’도 함께


박소영
동물권리론자이자 동물 구호 활동가. 14년 차 기자이자 7년 차 비건지향인. 모든 동물이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바란다. 《살리는 일》 《청소년 비건의 세계》 《박소영의 해방 :너머의 미술》을 썼다.

박수영
동물권리론자이자 동물 구호 활동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몇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친언니 박소영과 함께 길고양이 급식소 10여 개를 운영 중이며 함께 《자매일기》를 썼다.   



왼쪽부터 박수영·박소영 자매.왼쪽부터 박수영·박소영 자매.



소크라테스는 물었다. “육식을 한다는 것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들의 눈 속에 우리 자신을 비춰본 동물을 죽이는 게 아닌가?”. 기원전 400년에 태어난 그도,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24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그에게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오히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런지’ 물어야 할 형편이 아닌가.

한탄하는 대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박소영·박수영 자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체와 눈을 맞추고 밥을 먹인다. 이들이 애꿎은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밥자리와 물자리, 잘 자리와 살 자리를 챙긴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에는 퇴근이나 휴식이 없으므로 그들은 사는 날 동안 이들과 더불어 산다. 

동물을 살리는 일도, 그들을 죽여 먹지 않는 일도 홀로 하기는 쉽지 않다. 동물이 가지고 태어난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 행성에서 이들은 자주 동물과 함께 타자화된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마” 등의 익숙하고 폭력적인 말을 듣는다. 혹자는 수고하는 자매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자매가 귀히 여기는 동물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서 그들을 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은 그들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실천 방안을 탐색하며 함께 행동한다. 그리고 그 태도를 유지한다. 동물과 동물구호활동을 혐오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도, 구조한 동물이 기력을 회복해 생명을 되찾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나눌 사람도 서로다.  

김한민 작가가 쓴 《아무튼, 비건》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도살장에서 구출한 소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물쉼터에서는 방문객에게 소를 한 번씩 만져보도록 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소를 먹어봤지만 만져본 것은 처음이었던 이들은 소의 넉넉한 등판에 뺨과 귀를 갖다대고 두 팔로 안아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생물체에게 지금까지 가했던 고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너무 미안하구나”라는 말이 나온다. 

2016년 고양이 토라를 만나 그의 부드러운 털과 생생한 눈과 사뿐한 걸음걸이를 경험한 자매의 경우도 비슷했다. “너무 미안하구나”. 토라의 생명과 길 위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같은가. 토라의 가치와 내 식탁 위에 오른 동물의 가치는 또 얼마나 다른가. 그 질문이 이들을 다른 삶으로 이끌었다.
 


동생은 저한테 제일 좋은 친구였어요.

학창 시절에 친구도 중요하고 마음 맞는 친구도 있었지만

동생은 그때도 저에게 가장 마음이 잘 맞는 대화 상대였어요.

(박소영)

 

고양이 토라가 오고 네 달 뒤 제 생일이었는데

처음으로 생일이 꽉 차게 행복했습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생명이랑 한공간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느끼면서,

그동안 힘들게 이어왔던 관계들을 정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수영)



박수영 씨는 고양이를 구조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몸에 새겼다. 박수영 씨는 고양이를 구조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몸에 새겼다.


그날부터 시작해 볼게요. 고양이 토라가 두 사람에게 찾아온 순간.
(수영) “2016년 6월 12일 토라가 우리 집에 왔어요. 언니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같이 치킨을 시켜 먹기도 했는데 그날은 못 먹겠더라고요. 이렇게 음식으로 튀겨져 있는 닭이랑 토라가 전혀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데, 얘는 왜 여기에 있고 토라는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지? 아마 저는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토라가 오고 나서 3일 뒤부터 집 앞에 있는 고양이들이 보였어요. 급진적인 변화였던 것 같은데, 언니한테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고 언니도 그때부터 함께해 줬죠. 길고양이 급식소부터 채식, 개를 구조하는 일까지.”
(소영) “사실 저는 고기를 진짜 좋아했어요. 동생은 원래 안 좋아했고. (일동 웃음) 저는 고기 없이 밥을 어떻게 먹냐고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도 그게 맞는 방향이라면 힘들지만 같이 가보자고 한 거죠. 거의 모든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이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저는 영화 〈옥자〉를 보고 마음을 굳혔어요. 정확히 2017년 7월 2일에 채식주의자가 됐죠. 영화였지만 동물의 고통을 똑똑히 목격했고 앞으로는 절대로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동물을 사랑하는 일과 죽이지 않는 일, 살리는 일은 다 연결돼 있군요.
(수영) “동물이 제 삶을 바꿨으니까요. 저는 원래 좀 외로운 사람이었거든요. 늘 뭔가 되게 많이 외롭다고 느꼈어요. 연애를 하든 친구들이랑 어울리든 행복하다기보다는 사실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누군가와 어울려도 불행하고 안 어울려도 외로운 거예요. 토라가 오고 네 달 뒤 제 생일이었는데 처음으로 생일이 꽉 차게 행복했습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생명이랑 한공간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느끼면서, 그동안 힘들게 이어왔던 관계들을 정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영) “우리가 강하게 가지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도대체 왜 인간은 동물을 자기보다 하찮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예요. 지금도 그런 사고를 너무 자주 맞닥뜨리고 거의 대부분의 일상에서 그 사실을 마주해요. 왜 누가 누구보다 더 귀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너랑 나랑 다를 게 없는 존재인데요. 오히려 많은 경우 동물이 훨씬 인간보다 낫고요.”

고양이와 개를 거쳐 최근엔 너구리를 구조했다고요.
(소영) “요즘 너구리를 정말 많이 봐요.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산에 먹을 게 없거나 산이 망가져서 점점 더 도심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얘네가 갈 데가 없다는 거고요.”
(수영) “올해 여름이 기록적으로 더웠는데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
(소영) “사실 우리는 다 연결돼 있어요. 이다음에 올 것을 상상해요. 고양이가 갈 곳을 잃었고, 그다음은 너구리, 그다음은 누구일까요?”

우리 다음에 올 이들을 생각하면서 차에서 에어컨도 켜지 않고요.
(수영) “우리가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 시원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더 더워지진 않겠지,라는 생각이에요.”
(소영) “저는 가끔 화장실에서 손 닦는 휴지를 끝없이 뽑아서 쓰는 분들을 보는데, 한 번씩 말하고 싶어요. ‘한 장만 있어도 충분해요!’라고요.”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약자”라고 썼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이 굉장히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라 더 그랬고요.
(소영) “결국 모든 게 동물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받아들이는 사람의 피로도를 높이면 동물한테 안 좋거든요. 감정이 격하게 끓어오를 때도 있는데, 그 상태에서 글을 썼다가 결국 SNS에 안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건 내 감정이야. 동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서로 다독여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자매일기》를 쓰게 된 것도 동물구호활동이 그렇게 무겁고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어요.”
(수영) “사실 어딘가에라도 터뜨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터뜨릴 사람이 언니밖에 없을 때가 많아요.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도 있고요. 글을 쓰면서 그 감정과 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어요. 이 글이 읽는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기를 바라고요.” 

홍은전 작가는 “박소영의 글은 질문을 만들고, 박수영의 글은 장면을 만든다”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죠.
(소영) “수영이는 배우를 하고 영상을 만들던 아이라 장면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데 재능이 있어요. 저는 일을 하면서도 ‘원래 그래’라는 말을 안 좋아해요. 원래 그런 건 없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변화는 너무나 요원해져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으면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을까’를 물어야 해요. 그대로 있으면 달라지지 않아요. 수영이는 제가 어떤 의문을 가졌을 때 그 사고의 폭을 더 확장해 줘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알게 해주고요. 저도 처음엔 ‘에이,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수영이 말이 맞았구나’ 할 때가 있어요.”
 



박소영·박수영 자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