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평론가 신형철
오래된 이론이지만 노스럽 프라이에 따르면 네 개의 원형적 장르가 있다. 긍정적 변화인 ‘희극’과 부정적 변화인 ‘비극’, 이상에 대한 추구인 ‘로망스’와 현실에 대한 직시인 ‘아이러니’. 김금희 소설의 특별한 균형 감각은 이번 소설에서도 여전해서 그는 이야기라는 다면체의 무게중심이라고 할 만한 바로 그 지점으로 우릴 데려간다.
손열매가 배신감과 궁핍함이 겹쳐 우울증을 앓다가 완주로 떠날 때 우리는 힐링의 희극을 예상하고 소망한다. 그러나 과거에 큰 재난을 겪었고 이젠 개발을 둘러싼 갈등에 시달리는 그곳은 청정 구역이 아닌데 그래도 거기엔 강동경(‘어저귀’)이 있다. 못 하는 일도 없고 안 하는 일도 없는 슈퍼히어로 같지만 실은 그 패러디라고 해야 할 인물인데 왜냐하면 그는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압력 때문에 그가 대변하는 이상이 퇴장하고 말 때에도 우리는 손열매가 제 삶을 비극으로 끝내지 않으리란 걸 의심치 않는다. 손열매가 강동경을 통해 경험한 것은 그저 연애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일종의 회복임을, 그것이 어떤 ‘동경’의 ‘열매’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동경 혹은 열매란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프라이는 위의 네 장르를 각기 사계절에 매칭하기도 했던가.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이 다루는 건 여름이지만 우리는 사계절을 다 경험한 것 같다고 느낀다. 사계절,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다면체의 다른 이름 말이다.
아이유
『첫 여름, 완주』는 시작과 동시에 높은 채도의 개성 넘치는 문체와, 드라마와도 같은 친절한 호흡으로 등장인물들을 눈 깜짝할 새에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 속도와 리듬감은 흡사 영화 「마스크」 속 스탠리 입키스, 그러니까 짐 캐리의 춤을 연상케 한다.
춤추듯 완주 마을로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뻔뻔하면서도 어딘가 미스터리한 매력을 풍기는 마을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을과 숲을 지키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나무와 꿀벌을, 비밀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픽픽’ 웃음이 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 슬프지 않은 장면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나뭇잎 한 장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故) 신해철 선배의 유쾌한 대사 한 줄에조차도 필연 같은 슬픔이 서려 있지만, 어저귀의 숲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희한하게도 자꾸 ‘흥흥’ 웃음이 난다.
이끄는 곳마다
왱왱 꿀벌 소리와
보드라운 흙냄새와
억센 풀 냄새가 진동하는
완평에서의 걸음걸음.
방황이라는 레이스를 씩씩하게 ‘완주’해 가는 우리의 손열매.
그녀의 보폭을 따라 골목대장처럼 그 여름의 목적을 찾으러 다니다가 그만.
그 밤 그 숲에서,
영원의 신비(어쩌면 슬픔)를 느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