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 슬픈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말자.”
슬퍼도 무너져도 각자 몫의 완주를 해내는 사람들
손열매는 어린 시절 글을 못 읽는 할아버지에게 자막을 대신 읽어 주다 성우의 길에 접어든다. 성우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아 가던 열매는 십몇 년을 알고 지낸 룸메이트이자 선배인 고수미가 투자 손실을 빚으로 떠안고 사라지고 우울증으로 목소리도 변하면서 갑자기 길을 잃는다. 문득 떠오른 대로 수미 어머니 집으로 향하는 열매. 완주 마을에 당도한 열매는 사람도 돈도 일도 잃은 막막한 신세다. 그런 열매의 처지를 헤아린 수미 엄마는 “갈 곳이 저기하면 여기 있어도” 된다며 머물 곳을 내준다. 이런 열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어딘가 기이하기도 신비롭기도 한 어저귀는 인간에게 지친 나머지 “인류애 상실”이라고 외치고, 옆집 중학생 한양미는 춤을 연습하며 스타를 꿈꾸지만 변변히 돌봐 주는 보호자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행방이 묘연한 딸을 마음 한편에 품은 수미 엄마는 장례 지도사 일을 하며 홀로 암 투병을 하고 있고, 이제는 활동이 뜸해진 배우 정애라는 무슨 사정인지 이곳에서 개와 함께 혼자 살고 있다. 그 밖에도 차별과 오해를 받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대형 재해로 자식을 잃은 아픔을 지우지 못하는 용운 엄마 등 진짜 우리의 이웃 같은 이들이 완주 마을을 생생하게 채운다.
이처럼 다들 한편에 슬픔을 간직한 인물들이지만 소설은 이들을 처량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란 원래 그런 면이 있다고, 누구나 다 자신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웃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다고도.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낙담과 실패를 속 깊은 시선으로 살피는 이 소설은 웃음 속에 담긴 슬픔도 슬픔 속에 담긴 웃음도 모두 아우르며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의 진상을 따듯하게 그려 낸다.
낙담과 상처에도 놓지 않는 서로를 보듬는 마음
눈부시게 내려앉는 여름 빛처럼 찾아오는 어떤 평범한 기적
“할아버지: 사랑? 이, 사랑은 잃는 게 아니여.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212면)
세상을 떠난 열매의 할아버지는 꿈속에 나타나, 사랑을 잃었다고 말하는 열매에게 “사랑은 잃는 것이 아니”라고,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냐고 답한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무언가는 잃을 수 있지만 마음속에 지은 사랑은 잃을 수 없다고. 이는 연인 간의 사랑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저귀는 자연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는 열매에게 그것은 “친교적 조력”, 즉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나누려는 이 마음 역시 한번 지어지면 잃을 수 없을 터이다. 소설은 이렇게 마음속에 지어진 것들을 비추며 그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의 위안과 희망을 전한다. 때때로 우리의 현실은 엉망이 되고 “우리가 알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이. 열매는 서울로 돌아온 뒤 완주 마을을 찾은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이 도시에도 기적처럼 찾아오길 기원한다. 열매의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을, 소설이 펼쳐 보이는 어떤 기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